부산 근대 역사관,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에 다녀오다..- ③

 

  이번 마실의 메인이자 마지막 목적지인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



  부산 지하철 2호선 못골역 1번 출구에서 '남구 9'마을버스를 타면 역사관 바로 앞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유엔 평화 기념관·일제 강제동원 역사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되는데..

'유엔 평화 공원' 정류장과 헷갈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ㅋ;;

(우리는 정류장을 헷갈려서 아래에서 부터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가야 했다는...ㅋㅋㅋ;;;)



  입구에 가득 쌓여있는 '국민노무수첩'..

처음엔 정확히 뭔지 몰랐는데, 역사관 자료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

어림잡아도 몇 백 개는 되겠던데..

강제로 징용당한 분들의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물자 공출

 

  일제는 1910년부터 시행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소유관계가 불분명한 토지를 강제로 빼앗고 수많은 농민을 소작인으로 전락시켰다. 1920년부터는 산미증식계획을 강행하여 생산 능력을 넘어서는 양의 미곡을 일본으로 송출하였다. 그 결과, 많은 농민이 미곡수탈뿐만 아니라 늘어난 각종 비용 부담으로 말미암아 농토를 잃고 화전민이 되거나 고향터전을 떠나야만 하였다.

  일제는 중·일전쟁 전후로는 물자 공출 제도를 정비하고 금융통제기관을 설립하는 한편, 3차에 걸친 생산력확층계획을 통해 한반도 곳곳의 지하자원과 해양자원, 산림 등을 통제하였다. 군인과 군마의 식량은 물론, 각종 군수물자를 샅샅이 훑어갔고 물자통제와 생필품 배급제를 시행하였다.

  1944년 패전이 임박하면서 물자난이 극심해지자 전시농업요원제도나 농업생산책임제를 시행하여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식량 생산 책임 수량을 달성하도록 강요하였다.


 

'공출'되는 사람

 

  일제는 물자에 한정하여 사용하는 '공출'이라는 용어를 조선 민중에게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식량을 내놓을 수 없는 사람,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이 '공출'의 우선 대상이 되었다. 인력동원은 크게 군인[특별지원병, 징병], 노무자, 군무원, 일본군 '위안부'로 나눌 수 있다. 인력 '공출'에는 남녀노소 모두 해당하였으며, 노무자로 가장 많이 동원되었다. 노무자는 국민징용령이나 노무조정령 등 일제의 국가 법령에 따라 정책적 · 계획적 · 조직적 · 집단적 · 폭력적으로 각종 산업 현장에 동원되었다. 동원 경로에 따라 국민징용, 할당모집, 관(官)알선 등으로 세분한다.


 

 

 

  강제동원 주체인 일본이 작성한 통계를 분석했을 때, 강제동원 피해 규모는 최소 7,827,355명 (중복 동원 포함)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시 인구를 가늠해봤을 때, 가히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4층 전시관 중앙 홀..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모습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들이 거의 없고, 조용했는데..

집중해서 전시관을 둘러 보기엔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억해 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노동력 강제동원, 여자근로정신대

 

  일제는 이미 시행중인 여성노무동원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동원연령을 확대하여 강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1944년 8월 23일 여자정신근로령을 공포하였다. 이 규정에 의한 조선총독부의 '알선지도'에 따라 10대 초·중반의 여학생이 교장 및 담임교사의 지원종용과 감언이설에 속아 강제동원 되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1944년 4월 경부터 조선이나 일본, 만주 등의 공장으로 동원되었다. 지슴까지 밝혀진 동원지로 후지코시강재공업(주) 도야마공장, 미쓰비시중공업(주)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도쿄아사이토방적(주) 누마즈공장, 인청조병창 등이 있다.

  12~16세의 나이 어린 소녀를 동원하여 군대식 노동규율과 장시간 노동에 내몰았다. 그 결과 소녀들은 크고 작은 노동재해는 물론 지진, 공습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감과 굶주림에 시달렸고, 귀환 이후에도 다양한 후유증을 겪었다. 그러나 일본 당국과 기업은 소녀들에게 약속했던 상급학교 진학을 방기했을 뿐 아니라 이들에게 임금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 '정신대', 오해와 진실

   정신대는 "국가['천황']를 위해 솔선하여 몸 바쳐 일하는 부대" 라는 뜻으로, 일제가 노동력 동원을 확대하기위해 사용한 상징적 용어이다. 남녀노소는 물론, 노무자·군인·군무원 모두가 포함된 용어였으나 일반적으로 일본군 '위안부'[각주:1] 로 알려졌다. 일본 당국이 '위안부' 동원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정신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당시 조선사회에서도 정신대를 '위안부' 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와 동일한 의미로 수용 · 확산되면서 일본에 동원되었던 여성노무동원 피해자 전체가 끊임없이 가부장적인 시선과 부딪치는 이중적인 피해를 낳았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전시동원경험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면이다.

 


 

  입구에서 봤었던 '국민노무수첩'...

 

 

  강제동원을 해갔으면 최소한 그에 응당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게 옳지만..

그럴거였으면 강제동원을 하지도 않았겠지...

  

  * 노동조건

  조선인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노동계약은 체결될 수 없었다. 동원하는 자와 동원당하는 자의 관계일 뿐이었다. 조선인을 노동조건이나 근무환경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동원되었다.

  일본 당국과 기업은 형식적으로 만든 계약서마저 임의로 변경하여 강제동원 기간을 연장해버렸다.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작업장은 물론 숙소에서도 통제되었고, 숙소나 침구조차 없이 가마니 속에서 잠을 청한 사례도 있었다. 기본적인 작업교육도 시행하지 않아 노동재해가 끊이지 않았고 사고로 사망한 노무자에 대한 부조나 유해봉환이 규정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국제법 규정을 위반하면서 소년·소녀의 노동력까지 착취하였다.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노동의 가혹함은 물론 굶주림과 모멸감으로 더욱 고통받았다.

 


 조선농업보국청년대

  

  1940년경부터 1944년까지 매년 2회씩 농번기에 시행되었으며 15회에 걸쳐 총 3,000명의 조선농촌 청년을 일본에 파견한 제도였다. 일제는 조선 농업보국청년대 파견의 명분으로 선진 영농법 습득 등을 내세웠지만 그 실체는 일본농가에 무임금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 전후 연합군은 도쿄와 일본군 점령 지역 등에 설치된 국제전범대판을 통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단죄하였다. 이 국제전범재판에서는 조선인 148명도 실형에 처해졌다. 조선인 전범 중 129명은 군무원 신분의 포로

감시원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의 명령을 받아 연합군 포로를 강제노역에 동원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직접 포로를 상대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전후 연합군의 가장 손쉬운 희생양이 되었다. 일본은 가혹행위의 책임을 포로감시원에 전가하였고,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별하지 못한 연합군 포로는 조선인을 전쟁범죄자로 지목하였다. 전범으로 처벌된 조선인 중 사형을 당한 조선인은 모두 23명이었으며 그 중, 포로감시원은 14명이었다.

 

 B · C급 전범으로 수감된 피해자 [포로 감시원]

 

  동남아시아 지역 포로수용소에 강제동원된 군무원 중 많은 피해자가 일제 패망 후 B · C급 전범으로 현지에서 수감되었다. 사형을 면한 수형자들은 1950년대 초반 스가모 형무소[각주:2]로 이감되었고,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일본인 전점이 석방되는 와중에도 조선인은 상당수 제외되었고, 소송까지 진행되었으나 조선인의 석방 청구는 기각되었다.

 

 

특별지원병

 

  특별지원병은 1938년 일본 육군의 특별지원병제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특별지원병은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일제가 조선인을 군인으로 지원하도록 한 것은 침략전쟁에서 필요한 병력 자원을 얻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지원은 형식에 불과하였고 실제로는 지역별 할당과 유력자의 선동과 회유, 관공서와 경찰의 협박이 뒤따랐다.

  특히, 당국에서 적격자 전원의 입영을 목표로 했던 학도지원병의 경우에는 전문학교 재학 이상 대상자 중 96%가 지원서에 서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강요와 협박이 자행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지원을 거부한 사람은 강제로 수용되어 군사훈련과 사상교육을 받았고, 이후 응징학도 · 학도응징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내 여러 작업장에서 노역을 강요당하였다. 특별지원병제도에 의한 동원은 육군 2만 천여명 (학도지원병 포함), 해군 3천 명에 이른다.

 

 

  여러 분야로 강제동원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카미카재에도 동원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카미카재가 비인간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여기에도 우리들의 선조가 투입되었을 줄이야..

스스로 무지했다는 사실이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많이 부끄러웠다.

 

▶ 자살특공대로 강제동원된 인재웅의 사진이다. 제 4항공군사령부 소속 군인으로 강제동원되어 1944. 11. 29.

필리핀 레이테 만에서 사망하였다.

 

▶ 제 13기 동경육군항공학교 소년비행단 동기생들이 인재웅 사망 이후 만든 비망록..

 

  일본군이 주둔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위안소가 운영되었다고 하니..

위의 사진자료만 보아도 그 수가 어마무시하다..

 

▶ 강제동원된 학도지원병 중 중국 전선에서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한 이들도 있었다. 실패하면 투옥이나 사형을 면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생명을 담보로 한 이들의 탈출은 일제에 대한 항거를 넘어 항일독립에 대한 강렬한 의지였다.

 


 일본으로부터의 귀환...

 

  패망한 일본 정보는 조선인의 귀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선인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구로 밀려 들었다. 그러나 항구에는 배가 거의 없어서 조선인은 노숙하면서 몇 달씩 항구에서 기다려야 하였다. 급한 마음에 무허가 선박이나 소형 어선 등을 타고 귀환하기도 하였지만, 태풍을 만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1945년 10월에서야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조선인 송환에 대한 지령을 내려 집단송환이 이루어졌지만, 들고 갈 수 있는 화물의 무게와 돈을 1인당 250파운드 (113.4㎏), 1,000엔 이하로 제한하였다. 당시 1,000엔은 한국에서 겨우 쌀 두 말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이 때문에 귀환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강제로 끌려가 중노동에 시달린 조선인은 착취당한 임금과 강제로 예탁한 저금 등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 채 목숨만 부지해 돌아와야 하였고, 일부는 일본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지만 강제동원 역사관에서 사진과 영상자료를 보고나서는 느낀 점은..아휴..;;

 

  일제치하에서의 고통을 뒤로한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말 그대로 수장시키다니..

마지막까지 진실을 감추려 만행을 저지른 일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일제치하에서 강제동원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 기업들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업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일일이 체크해보고 싶었지만, 관람시간이 얼마남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고 뒤로하였다.

 

  4층 전시관의 마지막이었다.

사실 전시관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일제의 악행을 생각해보자면 분노가 차오르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강제동원 역사관은 각종 자료들을 근거로한 사실을 보여주되 현재가 아닌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있는 듯 했다. 맹목적으로 일본을 욕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도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힌 일본이었지만 현재의 일본내에서도 양심을 통해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알리려 노력하는 사람들일 있음이 불행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4층 중앙홀에서 "4번의 전쟁, 아물지 않은 상흔"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1894년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1904년 러일전쟁..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까지 4번의 전쟁이 한반도에 끼친 영향과 그에따라 우리에게 남긴 상처와 흔적을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요로코롬 시기별로 구역을 나누어서 전시가 되어있고..

전쟁의 원인과 배경 등의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워서 좋았던 것 같다.

 

▶ 담배카드 - 독일 리비히 시에서 발행한 홍보용 카드로 조선군인, 궁궐, 서울 시가지 등 서양인들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 세계대전기념대지도 - 일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활약한 주요인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 청일전쟁 판화


▶ 태평양전쟁 엽서

 

▶ 태평양전쟁 일본군 엽서

 

 

  다음 전시관은 다음 층인 5층에있서 5층으로 고고~~!!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 전체에 강제동원 피해자와 기증자들의 사진액자가 가득 걸려있었다.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시관 시작과 함께 볼 수 있던 벽면의 문구..

 

▶ 일본 홋카이도개척지기념관(北海道開拓記念館) 다코베야(タコ部屋) 모형을 바탕으로 제작

 

 

 

  짧은 에피소드를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다코베야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탄광입구..

 

▶ 사갱(斜坑)에서 누운 채로 채탄 작업 중인 조선인 노무자

 

▶ 탄광 사고현장

 

▶ 탄차로 석탄을 실어 나르는 조선인 노무자

 

▶ 중 · 서부 태평양의 방공호는 항공기의 공습을 피하고, 적의 함포 사격이나 지상군의 포격을 피하고자 땅속에 굴을 파거나 지상에 엄폐물을 구축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공습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조선인들은 방공호에 못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방공호 앞 쪽 표지판을 보기에 "朝鮮人~防空壕~ない" 정도만 보여서 부정적인 뜻이란 것만 파악하고..

  후에 번역기를 돌려봤더니..

"조선인은 방공호에 들어갈 수 없다" 는 경고문이더라..ㅂㄷㅂㄷ

 

 

  위안소 내부의 모습으로 규칙을 정리한 판과 사람이름으로 보이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위안소 규정'..

 

  위안소 방 내부..

 

 

  

 

  6층에서 바라본 중앙 홀 모습..

 

 

  6층에서는 이재갑 사진작가의 작품이 기획전시 되고 있었는데..

최근, 군함도를 통해 많이 알려진 '하시마 섬' 에서 촬영된 작품들이었다.

 

 

  작년에 다큐멘터리를 봤을 떄, 현재의 관광코스에는 미공개 구역이 많다고 들었는데..

작가님이 사진을 찍을 때는 제한구역이 없었는지 구석구석 촬영된 사진이 많았다.

11월 말까지 전시회가 개최되니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역시 다큐멘터리에서 일본이 '하시마 섬'을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하고 관광상품화하여 많은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실물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올 12월 까지 '군함도에 한국인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일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것' 이라는..

유네스코 권고사항을 좀 더 지켜봐야 확실해 지겠지만..제대로 이행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현재의 일본의 행동을 본다면..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 같고..

이에따라 과연 유네스코에서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관심있게 봐야할 것 같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추모의 계단'에서 찍은...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을 보고난 후, 전체적인 느낌은..

4층에서는 사진과 영상, 글..그리고 유물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고..

5층에서는 그 내용들을 토대도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간접적인 체험과 같이 만들어 놓은 듯 하였다.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고,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느꼈다.

  1.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가 1931년 만주침략 이후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이 설치한 '위안소'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말한다. 1932년 상하이上海에서 시작된 '위안소'는 중·일전쟁 이후 급격히 늘어났으며 정령지 확대에 따라 거의 모든 일본군 주둔지로 확대되었다. 피해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위안부'라는 용어는 문제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지 않으나, 당시 일제가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용어로 정착되었다. 영어로는 본질적인 의미를 반영하여 '일본군 성노예(Sex Slaves)'를 사용한다. [본문으로]
  2. 도쿄 스가모 형무소(巣鴨刑務所) : 일제 패망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접수하여 전범을 수용하였고, 도조 히데키 등 전범 7명을 사형시켰다. 사형을 면한 전범과 해외에서 이감된 전범이 계속 수감되었는데 그중에는 조선인도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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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근대 역사관,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에 다녀오다..- ②

  근대 역사관을 나와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위해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점심식사를 할 곳으로 몇 군데 생각해두었었는데 그 중에서 '동명 칼국수' 로 결정!!



 

  국제시장 내에 위치한 동명 칼국수..

지도보면서 찾아가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맛집으로 검색해서 찾아간거였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왔었던 곳이더라..ㅋㅋㅋ;;;


 

   역시, 왔었던 곳이 맞았어..!!ㅋㅋ

올라가는 계단이며, 식당 내부의 구조며..ㅋ

 


  날이 더우면 무조건 냉 칼국수 먹어야지 결정하고 왔기때문에..

고민없이 냉 칼국수 주문..!!ㅋ



  짜잔~!!얼음이 띄워진 냉 칼국수..

시원하게 한 뚝배기(?) 완칼!!ㅋ


사실 나오면서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칼국수를 보고 한 그릇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한건 안 비밀..ㅋㅋ


  점심을 먹고 나온 시간이 예상보다 일찍이어서..

빼려고 마음먹었던 '부산 전차'를 본래 계획대로 가기로 결정!!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후문쪽에 위치한 '부산 전차'는..

1952년부터 1968년까지 부산 시내에서 운행하던 전차로 미국 애틀란타 시내에서 20년 이상 운행되다가..

한국전쟁 이후, 무상원조 형식으로 국내에 수입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국내에 남아있는 전차 3대 중 한대로..

서울에 위치한 2대[각주:1]가 일본에서 제작한 것인 반면에 부산 전차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제작한 것이다.

 

 

   국제시장에서 15분 가량 걸어서 도착한 '부산 전차'..

 

 

  부산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후문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후문으로 들어가면 요로코롬 가까이서 볼 수도 있음..ㅋ

 

 

  '부산 전차'를 운행하던 시기의 사진자료..

 

 

  당시의 전차 승차권..

 

 

  온천장에서부터 운동장 전차종점까지의 노선..

동래, 서면, 부산역, 시청 등 주요 지점이 표기되어 있었다.

 

 

  '부산 전차'는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후문쪽에 위치한 임시수도기념거리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재하고 있는 곳이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이기 때문에 캠퍼스 내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오후 1시~2시 사이에만 내부를 개방한다고 한다. 외부를 보는 것은 시간제한은 없는 것 같다.

 

 

  조향이야 바닥에 깔린 레일을 따라 갈거니까 굳이 필요가 없었을 듯 싶고..

전, 후진 기어와 속도, 브레이크 정도의 기능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양쪽으로 좌석이 나뉘어진 모습이다.

순방향, 역방향 공평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ㅋ

서울 역사 박물관 앞에 위치한 전차를 봤었는데..

거긴 내부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히 사진 찾아보면 있을텐데..ㅋ

 

 

 

 

 


  '부산 전차'를 보고나와 마지막 목적지인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으로 향했다.

 







  1.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한 대를 봤었는데, 나머지 한 대는 서울 창경궁 근처에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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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근대 역사관,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에 다녀오다..- ①

 

  2017년 08월 29일..

콧구녕에 바람 넣으러 부산으로 가는 날..ㅋ

얼마 전, TV 매체를 통해 알게 된 부산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왕 부산까지 가는거 부산 근대 역사관까지 포함시켜 대한민국 근대사라는 큰 틀을 짜놓고..출~발!!

 

 

  태화강역에서 신 해운대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기다리다가..

언젠가부터 기차가 들어올 때 한 컷 찍는게 습관이 되어버린...;;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은 많지만..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나름은 여행기분도 나고 괜찮은 듯~

 

 

  먼저 들른 곳은 부산 중구 대청동에 위치한 부산 근대역사관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만들어졌고..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군의 숙소로도 사용되고..1949년 부터는 미국 해외공보처 미문화원으로 쓰였다.

한국전쟁 때는 미 대사관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미 영사관으로 잠시 사용되었다가, 미 대사관 통합운영으로 철수..

1999년 미 문화원으로 50년 3개월 동안 무상으로 사용되어 오다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되어..

2003년 부산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연혁만 보아도 기구한 역사가 느껴지는 듯 하다.

 

위치는 아랫부분 지도 참조!!

 

 

 

<인단(仁丹) 간판>

 

  인단은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주요 수입품이었다. 한말부터 신문에 많은 광고가 게재될 정도로 유명 수입품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자금모금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단연동맹으로 금단증상을 없애려했던 애연가들의 소비가 늘어 수입이 급증하기도 하였다.

 

 

  입구에 카메라 촬영 금지표시가 있어서 촬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삼각대 사용금지, 플래시 사용금지란다..ㄷㄷㄷ;;

누가봐도 카메라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표시였는데..ㅡ.ㅡ;;

안내직원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한 후, 촬영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촬영시작..;;

 

  인단이 뭘까하고 궁금해서 찍어온건데, 지금의 은단을 그 당시 지칭하던 말 같았다.

 

 <북선항로약도(北船航路略圖)>

  

 오사카상선의 항로와 지점을 홍보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항로를 통해 오사카상선의 운항 범위를 파악할 수 있다.

 

 

  현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항로 아래쪽에 각 지점과 대리점 명부가 나열되어 있다.

 

  큰 범위로는 만주(滿洲), 조선(朝鮮), 구주(九州)로 나뉘고..

조선 내에는 군산, 목포, 마산, 부산, 포항, 흥남, 청진, 인천과 같이 항구를 가진 대리점들과..

수도 경성의 경성지점이 눈에 띄었다.

약간 의외였던 것은 항구와는 거리가 먼 내륙에 위치한 안동대리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엽서(葉書)(조선우선주식회사(朝鮮郵船株式會社)>

 

 부산어시장을 배경으로한 엽서.

 

 

  일본은 엽서 만드는걸 되게 좋아했던건가? 싶을 정도로 기념(?) 엽서가 많았다.

아무래도 일반에 자신들의 침탈 결과(?)를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일만지 연락 철도 교통도 (日滿支連絡鐵道交通圖)>

 

  이 것이야 말로, 일제의 침탈야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닐까 싶다.

일본보토를 제외하고도 조선, 만주, 중화민국까지..

이럼에도 불구하고 뉴라이트 같이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정신나간 집단이 있으니..;;에휴..

그 전 시기에 비해 일제강점기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철도 건설과 같은 교통의 건설은 일제가 약탈품을 유용하게 옮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지..

원주민인 조선인이 편하라고 만든게 아니지 않은가..

또한, 조선인들이 이 전부터 지켜오던 것들을 포기하고 억압받은건?..그저 답답하다..

 

 

 <부산일보(釜山日報)>

  

  부산일보는 1905년 일본인 가쑤죠슈기찌 등이 『조선일보』로 창간했다가 1907년 1월 제호를 변경하였다.

부산일보는 일제의 대륙침략홍보에 적극적이었다. 부산 인근 뿐만 아니라 도쿄, 만주에도 지사를 둘 만큼 이름난 신문이었다.

 

*현 부산일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현, 부산일보와는 관계가 없다는 알림문구에서 학예사 선생님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3층의 전시실은 현재의 근대 역사관의 연혁에 맞추어 설명을 하려는 분위기였다.

처음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동양척식회사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미국과 관계를 맺게 된 과정..

미문화원으로 사용되었던 시기를 지나 1982년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다루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단지,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같은 내용이 안내되어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신탁통치 반대 전단(信托統治反對傳單)>

 

  1945년 12월 27일 미국·소련·영국·중국 4개국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안이 포함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국내에 알려지자, 12월 28일부터 각계에서 신탁통치 반대를 천명하고 나섰다.

 

 

<신탁통치 반대 전단(信托統治反對傳單)>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전잔들이다. 1946년 1월 12일 서울운동장에서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주최로 신탁통치반대 국민대회가 열렸는데, 각 정당, 부인단체, 청년·학생단체, 종교단체의 회원과 각계 대표 및 일반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반탁시위를 벌이고 시가행진을 감행하였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신문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근대 역사관에서 설명하고 있는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1982년 3월 18일 당시 일방적 의존의 대상이었던 미국에 대한 반감의 표시에서 몇 명의 대학생들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반미의 무풍지대로 인식되었던 남한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내 일부의 반미 감정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인용되고 있으나, 방화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점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라고 되어있다.

 

  미국에 대한 반감의 표시라고만 되어있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어서 찾아 봤더니..

1980년 광주에서 발생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어느정도 연관이 되어 있더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기에 미국이 신군부의 군대 동원을 용인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1981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의 지지와 공고한 한미동맹관계를 확인하고 제5공화국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화운동세력에게 미국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 의식을 확산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기에 과격한 방식이긴 했지만 방화를 통해 이를 비판하려했던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최근 5.18 민주화 운동이 재조명되어 민간인에게 발포를 명령한 명령을 내린자,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한 실상이 파헤쳐지고 있으며, 얼마 전에 미국이 용인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체로키 문서'를 통해 짐작케 하기도 했다.

 

사진에 보이는 신문자료만 보더라도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타이틀이..

"부산 미문화원 불 불순분자가 방화"라고 되어있는 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왼쪽 상단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복전 양조소, 부산곡물상조합, 소기세탁소, 오곡가구점)>

 

<술병과 술독>

 

  술병이랑 술독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었다..

주당들이 사용했었던 술병인가보다..ㅋㅋ;;;

 

  <담배가격표>

 

<담배갑과 구라곤 살충제>

 

  경제부분에 있던 전시품들인데..

구라곤 살충제를 제외하면 술, 담배와 관련된 것들이다..ㅋ;;

 

<좌측 상단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상생관, 보래관, 삼중출판사, 부산우편국)>

 

<LP 음반 앨범>

 

<영사기와 축음기>

 

<라디오>

 

  경제와 문화에 관련한 전시품들과 그와 관련된 당시의 건물들이 액자로 걸려있었는데..

그 장소들을 축소하여 근대 거리를 조성하여 놓았다. 저 멀리 전차에서는 영상자료를 볼 수 있어..

잠시 앉아서 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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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광역시 승격 20주년!! UBC 방송 개국 20주년 특집 뒤란을 다녀오다..


  오랜만에 뒤란공연이 생각나서 검색을 했는데..

이번 주 뒤란의 특집 타이틀이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 UBC 방송국 개국 20주년..!! 이다..

게다가 출연가수도 코요태에 인순이..乃

카메라를 챙겨들고 뒤란공연이 열리는 울산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시작 40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관람좌석은 만석..ㄷㄷ;;

꼭대기로 올라가서 대강 자리를 잡았다..

 

 

  공연시작에 앞서 관람객들의 호응유도 부탁과 간단한 이벤트를 진행한 UBC 김수희 리포터..ㅋ

 

 

  7년 째, 뒤란의 MC를 맡고 있는 중후한 목소리가 매력인 JK 김동욱!!

위크가 가미된 매끄러운 진행..칭찬해!!ㅋ

 

 

  첫 번째 무대는 펑키 소울 밴드 "커먼 그라운드"..

 

 

  이름을 몰라 미안하지만.....

트럼펫과 드럼 연주자..

 

 

  연주 밴드라 그런지 뚜렷한 보컬이 없었는데..

이 섹소폰 연주주가 메인 같은 느낌이었다.

 

 

  흥이 넘치는구나~ 지화자~ 좋다~!!ㅋㅋ

 

 

  마지막에 다시 소개를 하는데..

SNL 코리아에서 오프닝 음악 등을 연주하는 메인 밴드라고 하더라..오올~

이 소릴 듣고 나니 왠지 익숙한 음악 같더라는..ㅋ

 

Saturday Night Live Korea - SNL Opening theme 2016 (COMMON GROUND)       <출처 - 유튜브>  

 

 

  내가 뒤란에 온 이유..ㅋㅋ

코요태..김종민, 신지, 빽가..

오랜만에 완전체를 보니 완전 반가웠다~ㅋ

 

 

  카메라 줌 테스트 차 최대로 당긴 클로즈 업..ㅋ

손떨림만 줄인다면 나쁘지 않은 듯..ㅋ

내 뒤 쪽에서 보고 있던 어떤 관람객은 카메라 LCD로 보이는 화면을 보더니..

줌 기능에 화질도 좋다고..ㅋㅋㅋ

SONY, HX90V 좋았어~!!

친구들이 이걸 보면 날더러 또 SONY 빠라고 하겠지?!ㅋㅋ

 

 

 

  완소 MC, JK 김동욱과 인터뷰 중인 코요태..

 

 

  이번 뒤란이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 기념 특집이라며..

김종민 더러 축하말씀을 해보라며 부추기는 신지..ㅋㅋ;;

 

  급 당황한 김종민의 모습도 재밌었..ㅋㅋ

 

♭♪ 실연 ♬

 

  첫 번째 무대, 실연..

아직 제대로 입장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와 재빠르게 녹화버튼을 눌렀더랬다..ㅋ

개인적으로 코요태 2집 앨범을 제일 좋아라 하고..

이번 뒤란에서 실연을 불렀으면 좋겠다 했는데..

첫 번째 곡이라니..乃

 

 ♭♪ 패션 - 파란 ♬

 

♭♪ 비몽 ♬

 

♭♪ 순정 ♬

 

  앵콜곡 순정을 마지막으로 아쉽지만 코요태와는 빠이~

 

 

  세 번째 팀은 남부지방 아카펠라 팀 비타민이라고 하더라..

각 지방을 근거로 한 여러 음악활동을 하는 팀이 많은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쉽다고 하면서도..

이렇게라도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고 하더라..

 

  좀 더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이돌과 인기있는 몇몇의 가수로만 소비되는 음악이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트로트 메들리 (꽃 - 내 나이가 어때서 - 무조건) ; 아카펠러 Ver. ♬

 

 

  이번 특집 뒤란의 메인 인순이..!!

 

 

  인터뷰 중..

 

 

  난 인순이가 '거위의 꿈'이나 '아버지'를 불러줬으면 싶었다..

 

그런데.....

 

♭♪ 열정 ♬

 

  시작부터 강렬했다..ㅋ

나이에 못지 않게 현란한 웨이브 솜씨..

솔직히 많이 놀랐다..

 

♭♪ 링딩동 ♬

 

  샤이니의 링딩동을 부르며 춤을 추는데..

그냥 다른 말이 필요없이 '엄지 척..!!' 말 그대로 최고였다..

 

♭♪ Let Everyone Shine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제가) ♬

 

  근황을 물으며 시작된 인터뷰에서..

2018년에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맡게 되었고..

성화봉송 주제가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D-200 기념일에 공개되었다고 하는데..

난 처음 들어보았다..ㅋ

 

  왠만하면 처음 듣는 노래를 좋다 안좋다 평가를 못하는 편인데..

이건 왠지 좋았다..ㅋ


♭♪ Old 친구여 → Young 친구여 ♬

 

  조PD와 불렀던 노래 친구여를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과 무반주로 조용필의 친구여를 불렀다..ㅋ

감성 포텐 터지는 줄..ㅋ;;

어쩔까 하다가 영상찍는 타이밍을 놓쳐서 전반부가 많이 날아가서 아쉽다..ㅠㅜ 

(어랏~!! 그러고 보니 둘다 "조씨"가 부른 친구여 구나..ㅋㅋㅋ)

 

♭♪ 밤이면 밤마다 ♬

 

  마지막 곡은 밤이면 밤마다~♭♬

선곡을 보아하니 오늘은 완전 작정을 하고 온 듯 했다..ㅋㅋ

그야말로 파뤼 타임~!!ㅋㅋ

신나서 좋긴한데..

한편으로는 '거위의 꿈' 이랑 '아버지' 를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ㅠㅜ

 

♭♪ Fly To The Moon ♬

 

  앵콜 곡으로 선택된 곡은 Fly To The Moon~♭♬

역시 노래 잘부르고 가창력인 좋은 사람은 어떤 장르의 노래를 불러도 잘 부르는 구나 느꼈다..ㅋ

 

  이 곡을 끝으로 뒤란 공연은 끝이 났다.

울산이라는 문화생활의 불모지에서 뒤란과 같은 공연이 있어 참 좋은 것 같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음만 먹으면 강변 산책 중에도 올 수 있고..

번화가 근처라 교통도 나쁘지 않고...

 

항상 시간에 쫓겨서 보고 싶어도 포기한 적이 많았었는데..

가끔이라도 종종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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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산 태화강 동굴피아 방문하다..

 

  2017년 7월 28일 준공식을 한 남산 태화강 동굴피아에 다녀왔다.

어렸을 때, 남산 강변로를 지날때마다 동굴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입구를 막아놓은 나무판을 보고는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재정비를 하고 꾸며서 일반인에 개방한거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태화강전망대 건너편 남산사 옆 쪽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긴 하지만 협소한 편이고..

동굴피아 입구까지는 산책로와 도로 옆 인도를 걸어 700미터 가량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태화강 강변 주차장에서도 도보로 꽤 이동해야 하고, 대중교통도 337번, 407번 버스만 다니는 터라..;;

대중교통 이용 시, 337번이나 407번 시내버스로 "크로바 아파트 앞" 정류장에 하차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이 곳이 태화로터리 방면 크로바 아파트 앞 정류장..

크로바 아파트 방향으로 100미터 정도만 가면 동굴피아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동굴피아의 입구..

무료개방 기간이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꽤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했다..

 

  7월 28일에 준공식을 마치고, 29일부터 8월 6일까지 무료개방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 부터 오후 8시 까지이다. (입장마감은 오후 7시 30분)

매주 월요일은 휴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8월 8일 부터 유료입장으로 전환되는데..

유료입장의 경우 어른은 2천원, 어린이는 천원으로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동굴피아는 총 4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으며, 1~3동굴까지는 하나로 이어져 있지만..

4동굴은 외부로 나가서 조금 이동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현재, 4동굴은 귀신의 집 처럼 꾸며놓아 오후 4시 30분 부터 개방한다고 공지되어 있었고..

오전에는 막혀있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관람객들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금방금방 빠졌다.

 

 

  동굴 관람은 제1동굴 → 제2동굴 → 동굴광장 → 제3동굴 → 태화강 연결로 → 제4동굴 → 인공폭포 순이다.

 

 

  드디어 제1동굴입구에 도착..!!

입구안쪽에서는 노란색 안전모를 지급한다.

혹시 모를 낙하물이나, 머리를 부딫힐 위험에 대비한 안전조치인데..

사실 큰 위험은 없지만 어린이들이 보고 따라배울 수 있으니..

꼭 착용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동굴 내부의 모습..

분명히 외부 온도보다는 낮지만..

강원도에 위치한 환선굴 같은 동굴의 서늘한 온도를 기대하면 실망하게 된다..ㅋㅋ;;

여름에 굳이 긴팔을 준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 1동굴은 동굴 역사관으로 이 동굴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대략적인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동굴은 일제감점기 일본군이 인근 마을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비행기로 수송하여 보냈다고 하는데..

당시 수탈한 물자들을 이 곳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강제 부역을 동원하여 이 곳에서 비행장까지 나르게 한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었다.

 

 

 

  이 지도를 봐서는 현재의 어디쯤에 비행장이 건설되었었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일제시대의 아픔이 있는 곳이 광복 후에는 주점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ㅋ

 

 

 

  제 2동굴로 가는 길목..

조그마한 전구들을 달아놔 꽤 괜찮은 분위기여서 포토존이 될 듯한 생각이 든다..

실제로도 관람객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다고 카메라 화각에 들어가지 않으려 제법 기다렸다는..;;

 

 

  제 2동굴을 동물을 주제로한 라이팅 아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슴..

 

 

곰..

 

 

백로..

 

 

부엉이..

 

 

개인적으로 가장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마음에 들었던 호랑이..

마치 정말 호랑이 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달까?!ㅋ

 

 

  여긴 반사되는 거울로 이루어진 공간인데..

그 주위로 형형색색의 조명을 비추어 제 2의 포토존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ㅋ

 

 

  제 2동굴의 분위기는 이러하다..!!

 

 

  제 2동굴 끝에는 동굴 광장이라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바닥이 반짝반짝 거려서 천장을 봤더니.....

 

 

  분수 같은 것이 뙇!!

물결에 반짝반짝 거리는 것이었다.

보기에는 시원해 보이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함정..ㅋㅋㅋ

 

 

  요로코롬 생겼다..ㅋ

 

 

  외부의 모습인데, 아직 공사가 진행중인 모양이었다.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지만, 이 주위도 근린공원처럼 잘 꾸며졌으면 좋을 듯 싶다.

 

 

  제 3동굴로 가는 길목..

물고기 모양이 뭔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 3동굴은 동물 스케치 아쿠아리움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어떤 형식인지 궁금했다..

 

 

  전체적인 제 3동굴의 모습인데..

좌측에 보이는 스케치 공간에서 그림을 그려 스캔을 하면, 우측 스크린에 나타나는 방식인 듯 했다.

 

 

  스케치 공간에는 대략적인 작업방법과 예시 그림이 공지되어 있었다.

무료개방 기간이라 그런지 직접 체험해 볼 수는 없었다.

 

 

 

 

  그림을 스케치하여 스캔을 하면 요로코롬 빔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쏴 주는 듯 했다.

특히,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ㅋ

 

 

  제 3동굴에서 출구쪽으로 나오면 양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제 4동굴로 갈 수 있는 출구가 오른쪽은 태화강변으로 연결된 길이다.

 

 

  일단은 제 4동굴로 가기 위해 출구로 나왔다.

제 1동굴 입구에서 받은 안전모를 반납하는데,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는지 어르신들께서 고생하신다.

어르신들의 일자리 차원에서 이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식으로 유료개방할 때는 좀 더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제 4동굴은 이전의 동굴과 달리 출구를 나와 재입장해야 하는 방식인 듯 했다.

 

 

  현재는 공포체험 공간으로 이용되는 듯 했는데..

 

 

  입장시간이 오후 4시부터 7시 30분 까지로 한정되어 있어 이용해 볼 수 없었다.

 

 

  인공폭포와 분수는 시원해보여 보기에 좋았다.

밤에는 조명까지 켜주어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는 듯 하다.

 

 

  인공폭포 안쪽 공간으로 엷은 물보라가 바람에 날려 들어오기도 했다..

안쪽에서 포즈를 잡고 바깥쪽에서 사진을 찍는 또 하나의 포토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폭포 끝은 또 양갈래 길로 나뉘었는데..

한 쪽은 쉼터와 함께 현재는 막혀있지만 남산 산책로와 연결시킬 모양인 듯 했다..

 

 

 

  인공폭포 주변 모습..

 

 

  제 3동굴에서 태화강변 방향으로 나오면 멀리 태화강 대나무 숲이 보인다.

 

 

 

  절 멀리 태화강 전망대가 보인다.

동굴피아와 태화강 강변이 연결된 이 곳 입구에는 자전거 도로가 지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사람들과 동굴피아에 방문하려는 사람들 모두 주의가 필요할 듯 하다.

 

  8월 8일부터는 성인기준 2천원의 입장료가 발생한다.

동굴피아를 재정비하는데 150억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책정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지 않은 규모에 한정된 컨텐츠로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민에게 돌아온 동굴은 환영할 일임이 확실하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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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안리 - GG 투게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구매, 개봉기

<이미지 출처 - 인벤, 뉴스기사>

 

 

 

  2017년 7월 30일, 오전 7시 서둘러서 집을 나선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구매를 위해..ㅋ

솔직히, 30대 중반의 남자라면 누구나 즐겼던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한 때는 천연기념물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어느 한 친구녀석이 게임을 가르쳐 주겠다며 1:1로 방을 만들고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접했었는데..

이 녀석 초보를 농락하고 싶었던건지..

초반에 질럿을 뽑아 입구를 막고 물량을 모아서 병력을 생산하라고만 알려주었다..

아마 그 때의 맵을 Lost Temple로 기억 하는데, 질럿 세 마리면 입구가 막아지더라..

신나게 병력을 생산하는데 뒤에서 누가 날 공격한다..;;

처음엔 영문을 몰랐었는데..

알고보니 친구녀석 셔틀에 일꾼을 태워 내 본진 안쪽에 포토캐논을 지어놓은 거더라..ㅡ.ㅡ;;

엄청난 배신감과 함께 GG를 치고 스타크래프트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는 웃픈 이야기..ㅋ

 

  여튼 이쯤에서 각설하고, 최신그래픽과 사운드로 업그레이드 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출시된다고..

알려졌을 때, 꼭 구매하고 싶었다. 게임을 할 줄은 모르지만..

내가 자라온 그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이기도 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30일 3천장의 1차 물량, 7월 11일 2만장의 2차 물량 모두 품절이 되고 이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GG 투게더 행사장 블리자드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5천장이 기회였다.

 

<이미지 출처 - 브레인박스 문태환 기자님 리뷰>

 

                                                                                      <이미지 출처 - 인벤, 뉴스기사>

 

  8시에 부산 해운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광안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는 한산한 분위기..였으나 이미 블리자드 스토어 왼편으로 길게 늘어서있는 줄..;;

일단은 분위기 파악을 하고 줄을 섰다..

지나가는 Staff에게 물었더니 GG투게더 행사장 입장권 배부를 위한 줄이란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구매줄은 스토어 오른편에 있다고 알려준다.

 

  블리자드 스토어 오픈까지 남은시간은 약 3시간..

구매를 희망하는 구매자들은 열 명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전 11시 반대쪽에서 진행되었던 입장권 배부를 받은 사람들이 러시해왔다는건 안 비밀..ㅋㅋ

 

 

  블리자드 스토어가 오픈되길 기다리면서 멍하니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는 즐기는 사람들 구경만 했다.

 

 

  오전 11시가 지나자 디스플레이 등 오픈준비를 하는 Staff들..

 

 

  가이드 라인을 설치하고 있길래 곧 열어주겠거니 했는데..

진짜 12시 되니까 오픈하더라..독한 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개발팀의 사인회 준비 모습..

솔직히 목적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초회한정판 구매만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12시에 블리자드 스토어가 오픈하고..

5천장 한정에 1인당 2장까지 구매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정보만 알고 왔던터라..ㅋㅋ;;

초회 한정판에 개발팀의 친필사인까지 엄청난 의미 부여가 될 것 같았다.

 

 

  11시가 넘어서자 진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초반엔 5천장은 커녕 몇 백장이라도 판매될까 싶더니만..ㅋ;;

 

<이미지 출처 - 브레인박스 문태환 기자님 리뷰>

 

  12시 정오..

드디어 스토어 오픈!! 얏호~!!

 

<이미지 출처 - 인벤, 뉴스기사>

 

  요로코롬 구매 후, 개발팀들의 친밀 사인도 받고..

이를 통해 값어치 상승..!!

 

<이미지 출처 - 인벤, 뉴스기사>

  사인에 굉장히 열정적이신 개발자님..ㅋ

유일했던 여성 개발자님의 표정..ㅋㅋ

 

  원 목적이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구매였기 때문에, 다른 데는 관심을 두질 않았고..

사람들도 워낙에 많아서 블리자드 스토어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다양한 상품들이 있었다고 하더라..ㅋ

 

<이미지 출처 - 루리웹, 뉴스>

 

  오늘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구성품..

 

<이미지 출처 - 브레인박스 문태환 기자님 리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OST LP판..

이건 턴테이블이 없는 관계로..패쓰~;;

 

<이미지 출처 - 루리웹, 뉴스>

  오버워치 트레이서 스테츄..

꽤 비싼 금액임에도 스토어 오픈 1시간 만에 완판을 했다는 소리가 들리더라..

확실히 퀄리티는..!!乃

 

<이미지 출처 - 루리웹, 뉴스>

  어느 게시판 제목이 이 사진을 두고..

"고향에 온 송하나"라고 되어 있더라는..ㅋㅋ

사진으로만 봤어도 감히 퀄리티 짐작이 간다..

최..최...최...최고...!!!!

살짝 아쉬운 감이 있다면 송하나의 얼굴이 너무 서양인 틱해졌다는거?!

 

<이미지 출처 - 루리웹, 뉴스>

 

  이거는 뒷모습..

 

<이미지 출처 - 루리웹, 뉴스>

 

  이건 오버워치 리퍼 스테츄..

상품 설명이 "죽어, 죽어, 죽어" 단, 세단어만 적혀 있다는데..

왠지 음성지원이 된다..ㅋㅋ 

 

<이미지 출처 - 브레인박스 문태환 기자님 리뷰>

 

 

  블리자드 스토어 오픈 약 30분 후의 모습..

구매에 사인까지 시간이 많이 딜레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일찍가서 기다리길 잘 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전 9시 10분 쯤 도착해 줄을 서서..

일반인들 중, 전 세계에서 대략 열 번째로 제품을 받고..

개발자분들의 사인까지 받는 영광을..!!!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개봉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로고가 그려진 에코백에 담아서 주더라..ㅋ

박스 전면부에는 개발자분들의 친필 사인이..!! 다녀오길 참 잘 한 듯..!

그런데, 다른 커뮤니티를 보면 13개의 사인이 있다는데..

난 아무리 세어봐도 16개로 보인다..ㅡ.ㅡ;;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면 분명히 13명만 있던데..;;

사인 받을 때, 몇 명인지 세어볼걸 그랬다..;;쩝..

 

 

 

  밀봉 씰을 뜯고 박스를 열면 스타크래프트 마우스 패드가 가장 먼저 보인다..

 

 

  마우스 패드 아래로 또다른 조그마한 박스가 자리잡고 있으며, 매뉴얼 북과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스티커..

와우, 하스스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쿠폰이 들어있다..

 

 

  또 다른 박스 안에는 가장 중요한 디지털 코드가 담긴 카드와 엽서가 들어있다.

엽서는 열어보질 않아 정확한 이미지는 확인이 되질 않지만..

스타크래프트 유닛과 배경같은 이미지들로 채워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

열 장 가량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코드가 담긴 이 Key Card가 마음에 든다.

8월 15일이 되어야 등록을 하고 쓸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확인 후, 사진 촬영만 하고 다시 밀봉..ㅋㅋ

 

 

 

  이건 매뉴얼 북인데, 수록 내용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다..

나 같은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잘알못에게 스타크래프트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끝으로 전체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컴플리트팩 전체 구성품 사진으로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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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5 일본여행 3일차 - ③

ⓟⓗⓞⓣⓞ./여행길. 2015. 3. 29. 10:00

  근 1년여만에 다시 시작하는 포스팅..[각주:1]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일본 여행이지만, 오랜만에 사진을 보니까 반갑기도..

남은 포스팅을 어떻게 마칠지 막막하기도 하다..ㅋ

하지만, 완전한 포스팅을 위해 ㄱㄱㅆ~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하던 레인보우 브릿지..

캬~배경좋고, 구도좋고..ㅋ

 

 

  이건 여담이지만 예전에 Xperia S 사용할 때, 기본으로 있던 배경화면인데, 그 땐 몰랐다.

이 사진의 배경이 오다이바의 레인보우 브릿지였다는걸..;;

조금만 관심있었다면 Sony가 일본기업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추리해낼 수 있었을텐데..

  

 

  유리카모메 1일권과 오다이바 수상버스 탑승권이 묶인 상품을 구할 수 없던 우리는 하노데역에서 하차하기로 결정!!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바다가 있는 쪽으로 걷다보니 금방 수상버스 승강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티켓팅을 하기 전에 만날 수 있었던 유람선..

왠지 수상버스라하기에 규모도 크고, 으~리, 으~리 한 것이 설마 설마했는데..

설마는 설마로 끝이났다..ㅋㅋㅋ

 

 

  승선시간보다 이른 시간이라 탑승장이 Open되지 않은 상태..

우측으로 보이는 조그만 배가 수상버스라는~

 

 

  탑승장이 Open되길 바라면서 한 컷~

(남는건 사진 밖에 없으리라..ㅋㅋ)

 

 

  오다이바수빈공원 수상버스 승선권..

 

 

  선실보다는 제대로된 경치를 보기 위해서 갑판으로 오른 우리..

정소장 선글라스를 써본 뱅기..ㅋ

암만 생각해도 스포츠 고글은 패션 매칭이 힘든 듯..ㅋㅋㅋ;;

 

 

  수상버스를 타고 떠나온 자리를 한 컷으로 남기며..

본격적인 오다이바 여행을 위해 출~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강하게 부는 바람과 눈부신 햇살에 찡그리는 녀석들..

 

 

  이건 레인보우 브릿지를 배경으로 나랑 병기..

 

  

  같은 장소 약간 다른 구도..ㅋ

누가 찍었는지 참 잘찍었네~ㅋ

 

 

  수상버스 도착하기 직전..

전면에 보이는 독특하게 생긴 Fuji 테레비 사옥..

방송국이란 폐쇄성에 약간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나름은 관광코스로 개방하여 일부는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뉴욕에만 있을 것 같았던 자유의 여신상을 오다이바에서 보게 될 줄이야..ㅋ

 

 

 

  1. 사실, 다시 한 번 포스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실패. 2차 시도.ㅋㅋ(2016년 02월 14일) 헐;; 빌어먹을 발렌타인데이네..-_-;;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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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5 일본여행 3일차 - ②

ⓟⓗⓞⓣⓞ./여행길. 2014. 4. 6. 20:26


  오다이바로 가기위해 신바시역으로 이동..



  오다이바로 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인 유리카모메를 타기위해 유리카모메가 연결 된 또 다른 신바시역사로 이동..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 內에서 환승이 가능한 반면에 일본은 각각 노선별 운행회사가 달라서..

같은 이름이라도 각각의 역사를 가지는 듯 했다..




  아사쿠사에서 히미코 탑승에 실패한 우리는 오다이바에서 수상버스라도 타기로 결정했다..

일본으로 여행 오기 전,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유리카모메 1일권 + 오다이바 수상버스 탑승권을 포함해서 900엔에 판매되는 티켓이 있었다..

그런데, 발권기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메뉴는 없었고..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그건 진작에 없어졌다고..;;;ㅋㅋ

반년도 전에 없어진 걸 이제서야 찾다니..;; 이 놈의 부정확한 정보..ㅋ;;

 

결국, 유리카모메 1일권만 구입을 하고, 히노데역에서 내려 수상버스 탑승권을 따로 구매하기로 하였다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무인전동차 유미카모메..

 

 

  요로코롬 운전을 하는 사람이 없다..;;

신기~신기..ㅋ

 

 

 

 

 

  왠지, 완간도로가 아닐까 생각되는..ㅋ

그 놈의 완간 완간...『춤추는 대수사선』의 폐해랄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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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5 일본여행 3일차 - ①

ⓟⓗⓞⓣⓞ./여행길. 2014. 2. 20. 18:06

 

 

 3일차 출발~!!

히미코를 타기 위해 아사쿠사로 이동..

 

 

 

  아사쿠사역의 역무원 아자씨~

깜빡이는 물건(?)으로 승무원과 신호를 주고 받는 듯~

 

 

  일본에서 가장 높은 것은 물론, 201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도쿄 스카이 트리..!!

구름위로 뻗은 탑의 상륜부만 보아도 634m의 높이는 가히 대단하다 느낄만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아사쿠사의 황금똥..ㅋㅋ아사히 맥주 본사..

 

 

  아시히 맥주 본사는 세계적인 건축가「필립 스탁」이 디자인했는데..

황금색 외벽과 고층부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거품모양을 디자인함으로써 컵에 담긴 맥주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 옆의 황금똥(?)은 사실 불꽃을 형상화 한것이라고 하는데..ㅋㅋㅋ아무리봐도.....(?)

 

 

  아사쿠사 역사 한 켠에 걸려있던 액자사진..ㅋㅋㅋ

벚꽃이 핀 봄의 풍경이 참 예뻐 보였다..

시기를 잘 맞춰서 오면 좋을 듯..

 

 

 

 

  아사쿠사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센소사가 있는 곳이다..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번화가였으나 관동대지진 이후, 폐허가 되었고..

일본 고도 성장기에 신주쿠, 시부야 등지에 번화가로서의 입지를 내주었으나..

현재에도 에도시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히미코를 위해 아사쿠사를 찾아 온거라...

자료를 찾다 보니 걸어서 10분이면 센소사 가겠던데..ㅠ.ㅜ

 

 

 

  아사쿠사의 명물..인력거..ㅋ

친구들 사이에서 1, 2, 3 을 맡고 있던 우리가 탔더라면..

저 분들 중 누군가는 참 힘들어하셨겠지?!ㅋㅋㅋ

 

 

   근처 지구대(?) 밖에 붙여져 있던 현상수배 안내문..

왠지 우리나라와는 분위기가 달라서 그냥 한 장..ㅋ;;

 

 

  히미코 선착장 도쿄 크루즈 도착~!!

 

 

  우리는 아사쿠사에서 오다이바까지 가는 녹색노선을 선택..!!

 

 

  히미코 선착장~ 

 

 

 

  아직 오픈시간이 되지 않아 요로코롬 사진도 찍고..ㅋ

그런데..그런데..오늘은 히미코 수리 점검으로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OTZ..엉엉..ㅠ.ㅜ

별 수 없이..;;아사쿠사에 온김에 끼니를 떼우고, 지하철로 오다이바로 이동하기로 결정..!!

 

 

  대로변 모퉁이에 위치한 "명대 부사소바"..

예상은 했지만 일본 한자 "부"자 확인하는데 고생했다는..ㅋㅋ

 

  일본은 자판기 문화가 많이 발전한 듯..

그다지 크지않은 이 곳에서도 자판기로 메뉴선택을 하고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돈가스 덮밥 가츠동..!!

 

<일본 드라마『춤추는 대수사선 1화』캡쳐>

  특별출연!! 아오시마 슌사쿠..ㅋㅋ

『춤추는 대수사선』을 보고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먹게되는 가츠동..ㅋ

 

 

  요거는 소바~ㅋ

 

 

 

  역시 초토화..ㅋㅋ나 쫌 쩌는 듯...ㅋㅋㅋ

 

 

  맛나게 잘 먹는 내 친구들..

이 사진 보고 순수해보이는건 왜인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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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4 일본여행 2일차 - ②

ⓟⓗⓞⓣⓞ./여행길. 2014. 2. 2. 16:51

 

  신오쿠보역을 나오면서 발견한 안내판..

故 이수현 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역이 신오쿠보역인지는 몰랐었다..

안내판을 보면서 괜히 숙연해지는 느낌이었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도 들었다..

무엇보다 각박한 이 세상에서 아직도 살아갈만하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오쿠보 지역은 첫 날 요코하마에서 본 쥬카가이 처럼 한국인들이 모여있는 코리아 타운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처음에 신오쿠보역을 나와서는 반대방향으로 가서 살짝 헤맸던건 비밀..ㅋ;;

제 방향을 찾아서 가본 곳은 딱히 코리아 타운 같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고 상점마다 한국 아이돌가수들의 브로마이드를 걸어 놓는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한국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사진은 신오쿠보 코리아 타운 초입에 위치한 한류 백화점..

우리의 주목적은 점심 식사였기 때문에 들어가보지는 않았다..ㅋ

 

 

 

  어느 팬시점 입구에 주~욱 늘어선 한국 아이돌 브로마이드!! 얼핏봐도 빅뱅과 JYJ가..ㅋ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메뉴선택이 되질 않아 더운날씨에 꽤나 걸어다녔던..;;

메뉴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가격면에서 그리고 더운 날씨도 한 몫하여...

결국, 냉면으로 선택..!!

 

 

  엄니식당 메뉴..ㅋ

아무래도 같은메뉴라도 한국에서의 가격과는 차이가 컸다..

수입하는 품목도 있을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한..ㅋ

특히, 국순당 생 막걸리 가격이..1,800엔..ㄷㄷㄷ

한국에서는 비싸도 1,500원이면 한 통을 사먹을 수 있는데..10배 이상 비싼..ㅋ;;

 

  환풍기에 가려진 막걸리 광고모델이 내 기억엔 조여정이었던 것 같다..

빌어먹을 환풍기 같으니라고..!!ㅋㅋㅋ

 

 

 

  낯선 곳에서 먹는 한국음식이란..캬~ㅋㅋ

아르바이트하는 한국 유학생에게서 이런저런 정보도 얻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잠시 재충전..!!ㅋ

 

 

  도쿄도청..!!

점심식사 후, 가까운 신주쿠로 이동..

신주쿠역에서 표지판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도쿄도청..

역에서 나오는길이 꽤나 길어서 무빙워크가 설치되어있다.

무빙워크는 하난데, 대부분의 시간은 도쿄도청쪽으로 움직이고..

일정시간대에 15분~20분씩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듯 했다.

 

  도쿄도청에도 전망대가 있지만, 우리는 요코하마에서 전망대를 보고온 터라 Pass~

신주쿠 중앙 공원에서 잠시 쉬다가 재충전을 위해 숙소로..고고~!!

이놈의 비루한 체력같으니라고..ㅋㅋ

이럴거 왜 신주쿠까지 간건지..;;

 

 

  숙소에서 두어시간 쉬다가 도쿄타워를 보기위해 다시 이동..

고탄다역에서 롯본기역으로 가기위해서는 중간에 에비스역에서 환승..!!

 

 

  롯본기역 도착..!!

에스컬레이터만 타고 올라가면 롯본기 힐즈 모리타워가 뙇!!!

 

 

  정소장님..ㅋ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분위기 있다잉~

 

 

  짜잔!! 이 건물이 롯본기 힐즈 모리타워!!

 

 

  모리타워 근처에 아사히 방송국도 있는 듯~

 

 

  간만에 독사진..ㅋ

 

 

 

    롯본기 힐즈 모리타워하면 떠오르는 거미동상[각주:1] 앞에서..ㅋ

 

 

  정소장과 뱅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멈춰있는 듯 한..ㅋ

  

 

  롯본기 힐즈 모리타워 입구에서..ㅋ

그런데, 시티뷰 전망대 입구는 이 곳이 아니더라는..ㅋㅋㅋ;;

 

 

  전시관과 시티뷰로가는 입구..

 

 

  시티뷰 티켓팅 중..

여기도 1인당 1,500엔이라는 거금이..;;

우리는 확실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아 현장에서 티켓팅을 했지만..

확실한 계획이 세워져 있다면, 현장 티켓팅 보다는..

국내에서 여행사나 오픈마켓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미리 티켓팅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시티뷰 전망대에 들어서면..뙇!!!

한 눈에 들어오는 도쿄타워의 모습..

 

  사실, 롯본기 힐즈 모리타워외에도 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가 목적지 후보였다.

스카이 트리의 경우 가장 최근에 만들어져 가장 높다는 점에서 매리트가 있었지만..

그만큼 가격도 비싸고, 무엇보다도 숙소에서 멀다는 점에서 탈락되었다..ㅋㅋ

남은 두 곳을 두고 고민을 많이했는데..

도쿄의 랜드마크 도쿄타워에 올라 다른 곳을 보기보다는..

근처에 위치한 롯본기 힐즈 모리타워에서 도쿄타워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시적인 관점보다 거시적인 관점이랄까?!ㅋㅋ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개인 컷~!!ㅋ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에비스역 앞에서 본 택시승차장..

 

  역앞에 이처럼 도로가 아닌 곳에 승차장이 조성되어 교통혼잡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시 가만히 생각해봐도 일본을 다녀온 기간동안 불법 주정차를 본 기억이 없는 듯 하다..

일본 정권이 극우익을 표방하여 문제가 있긴하지만..

그 외에는 확실히 선진국은 선진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경험해서 이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ㅋ;;

 

 

  3일차, 오다이바 관광을 위해..

정소장 탭북으로 일본드라마『춤추는 대수사선』마지막 극장판을 보았다..

1997년에 처음 시작한 드라마를 고1이던 2001년 정소장을 통해 접하고는 광팬이 되었는데..

2013년 극장판 4편을 끝으로 대망의 막을 내렸다..

 

익숙한 엔딩크레딧 BGM(주인공 아오시마 역, 오다유지 - Love Somebody)을 들으며 2일차도 마무리~

 

 

  1. 프랑스 출신의 미국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1911~2010)의 작품으로 작품명은 불어로 엄마를 뜻하는 마망(Maman)이다. 거미동상은 롯본기 힐즈 뿐만 아니라 캐나다, 영국 런던 등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 (서울 신세계 백화점 옥상, 삼성 '리움' 미술관)에도 존재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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