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근대 역사관,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에 다녀오다..- ①

 

  2017년 08월 29일..

콧구녕에 바람 넣으러 부산으로 가는 날..ㅋ

얼마 전, TV 매체를 통해 알게 된 부산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왕 부산까지 가는거 부산 근대 역사관까지 포함시켜 대한민국 근대사라는 큰 틀을 짜놓고..출~발!!

 

 

  태화강역에서 신 해운대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기다리다가..

언젠가부터 기차가 들어올 때 한 컷 찍는게 습관이 되어버린...;;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은 많지만..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나름은 여행기분도 나고 괜찮은 듯~

 

 

  먼저 들른 곳은 부산 중구 대청동에 위치한 부산 근대역사관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만들어졌고..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군의 숙소로도 사용되고..1949년 부터는 미국 해외공보처 미문화원으로 쓰였다.

한국전쟁 때는 미 대사관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미 영사관으로 잠시 사용되었다가, 미 대사관 통합운영으로 철수..

1999년 미 문화원으로 50년 3개월 동안 무상으로 사용되어 오다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되어..

2003년 부산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연혁만 보아도 기구한 역사가 느껴지는 듯 하다.

 

위치는 아랫부분 지도 참조!!

 

 

 

<인단(仁丹) 간판>

 

  인단은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주요 수입품이었다. 한말부터 신문에 많은 광고가 게재될 정도로 유명 수입품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자금모금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단연동맹으로 금단증상을 없애려했던 애연가들의 소비가 늘어 수입이 급증하기도 하였다.

 

 

  입구에 카메라 촬영 금지표시가 있어서 촬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삼각대 사용금지, 플래시 사용금지란다..ㄷㄷㄷ;;

누가봐도 카메라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표시였는데..ㅡ.ㅡ;;

안내직원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한 후, 촬영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촬영시작..;;

 

  인단이 뭘까하고 궁금해서 찍어온건데, 지금의 은단을 그 당시 지칭하던 말 같았다.

 

 <북선항로약도(北船航路略圖)>

  

 오사카상선의 항로와 지점을 홍보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항로를 통해 오사카상선의 운항 범위를 파악할 수 있다.

 

 

  현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항로 아래쪽에 각 지점과 대리점 명부가 나열되어 있다.

 

  큰 범위로는 만주(滿洲), 조선(朝鮮), 구주(九州)로 나뉘고..

조선 내에는 군산, 목포, 마산, 부산, 포항, 흥남, 청진, 인천과 같이 항구를 가진 대리점들과..

수도 경성의 경성지점이 눈에 띄었다.

약간 의외였던 것은 항구와는 거리가 먼 내륙에 위치한 안동대리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엽서(葉書)(조선우선주식회사(朝鮮郵船株式會社)>

 

 부산어시장을 배경으로한 엽서.

 

 

  일본은 엽서 만드는걸 되게 좋아했던건가? 싶을 정도로 기념(?) 엽서가 많았다.

아무래도 일반에 자신들의 침탈 결과(?)를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일만지 연락 철도 교통도 (日滿支連絡鐵道交通圖)>

 

  이 것이야 말로, 일제의 침탈야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닐까 싶다.

일본보토를 제외하고도 조선, 만주, 중화민국까지..

이럼에도 불구하고 뉴라이트 같이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정신나간 집단이 있으니..;;에휴..

그 전 시기에 비해 일제강점기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철도 건설과 같은 교통의 건설은 일제가 약탈품을 유용하게 옮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지..

원주민인 조선인이 편하라고 만든게 아니지 않은가..

또한, 조선인들이 이 전부터 지켜오던 것들을 포기하고 억압받은건?..그저 답답하다..

 

 

 <부산일보(釜山日報)>

  

  부산일보는 1905년 일본인 가쑤죠슈기찌 등이 『조선일보』로 창간했다가 1907년 1월 제호를 변경하였다.

부산일보는 일제의 대륙침략홍보에 적극적이었다. 부산 인근 뿐만 아니라 도쿄, 만주에도 지사를 둘 만큼 이름난 신문이었다.

 

*현 부산일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현, 부산일보와는 관계가 없다는 알림문구에서 학예사 선생님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3층의 전시실은 현재의 근대 역사관의 연혁에 맞추어 설명을 하려는 분위기였다.

처음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동양척식회사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미국과 관계를 맺게 된 과정..

미문화원으로 사용되었던 시기를 지나 1982년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다루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단지,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같은 내용이 안내되어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신탁통치 반대 전단(信托統治反對傳單)>

 

  1945년 12월 27일 미국·소련·영국·중국 4개국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안이 포함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국내에 알려지자, 12월 28일부터 각계에서 신탁통치 반대를 천명하고 나섰다.

 

 

<신탁통치 반대 전단(信托統治反對傳單)>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전잔들이다. 1946년 1월 12일 서울운동장에서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주최로 신탁통치반대 국민대회가 열렸는데, 각 정당, 부인단체, 청년·학생단체, 종교단체의 회원과 각계 대표 및 일반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반탁시위를 벌이고 시가행진을 감행하였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신문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근대 역사관에서 설명하고 있는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1982년 3월 18일 당시 일방적 의존의 대상이었던 미국에 대한 반감의 표시에서 몇 명의 대학생들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반미의 무풍지대로 인식되었던 남한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내 일부의 반미 감정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인용되고 있으나, 방화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점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라고 되어있다.

 

  미국에 대한 반감의 표시라고만 되어있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어서 찾아 봤더니..

1980년 광주에서 발생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어느정도 연관이 되어 있더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기에 미국이 신군부의 군대 동원을 용인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1981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의 지지와 공고한 한미동맹관계를 확인하고 제5공화국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화운동세력에게 미국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 의식을 확산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기에 과격한 방식이긴 했지만 방화를 통해 이를 비판하려했던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최근 5.18 민주화 운동이 재조명되어 민간인에게 발포를 명령한 명령을 내린자,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한 실상이 파헤쳐지고 있으며, 얼마 전에 미국이 용인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체로키 문서'를 통해 짐작케 하기도 했다.

 

사진에 보이는 신문자료만 보더라도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타이틀이..

"부산 미문화원 불 불순분자가 방화"라고 되어있는 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왼쪽 상단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복전 양조소, 부산곡물상조합, 소기세탁소, 오곡가구점)>

 

<술병과 술독>

 

  술병이랑 술독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었다..

주당들이 사용했었던 술병인가보다..ㅋㅋ;;;

 

  <담배가격표>

 

<담배갑과 구라곤 살충제>

 

  경제부분에 있던 전시품들인데..

구라곤 살충제를 제외하면 술, 담배와 관련된 것들이다..ㅋ;;

 

<좌측 상단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상생관, 보래관, 삼중출판사, 부산우편국)>

 

<LP 음반 앨범>

 

<영사기와 축음기>

 

<라디오>

 

  경제와 문화에 관련한 전시품들과 그와 관련된 당시의 건물들이 액자로 걸려있었는데..

그 장소들을 축소하여 근대 거리를 조성하여 놓았다. 저 멀리 전차에서는 영상자료를 볼 수 있어..

잠시 앉아서 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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